
기사의 주제를 표현한 AI 제작 삽화입니다.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실물 자료가 아닙니다.
1923년 3월, 오늘날 서울인 경성에서 어린이를 위한 잡지 『어린이』가 창간됐다. 천도교 소년회가 발간을 추진했고 개벽사에서 첫 호를 냈다. 방정환은 잡지 발간을 이끈 중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잡지에는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동화와 부를 수 있는 동요가 실렸다. 어린이가 연극으로 꾸밀 수 있는 글인 동극도 다뤘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어린이』가 이처럼 여러 종류의 작품을 구분해 싣고 새로 지은 동화와 동요를 소개하면서 우리 어린이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읽는 어린이가 글을 보낼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잡지에 실을 글을 독자에게 받는 ‘독자투고란’이다. 우리역사넷은 이 지면을 통해 알려진 사람으로 윤석중과 이원수 등을 들고 있다. 잡지에 소개된 동요 가운데는 윤극영의 「반달」과 이원수의 「고향의 봄」도 있었다.
방정환이 발간을 이끌었다는 말과 첫 호의 발행인이었다는 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1호부터 30호까지의 발행인은 김옥빈이었다. 방정환은 31호부터 82호까지 편집과 발행을 맡았다. 잡지는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졌다.
『어린이』는 1934년 7월까지 122호가 나왔다. 광복 뒤인 1948년 5월에는 123호부터 다시 발행됐다. 우리역사넷은 잡지가 널리 읽히면서 ‘어린이’라는 말이 퍼지는 데도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근거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어린이」, 「방정환」 관련 교육 자료.
이 기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작성했으며, 공식 자료와 대조했습니다.
[약산소식지 권용진 알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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